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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날

1. 마침내 해준은 잠을 잘 잤을까? 잠복근무를 해서 잠을 못 자는 거라고 투덜대는 파트너 형사에게, 그게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잠복근무를 하는 거라고 말하는 해준. 그에게 잠은 중요하다. 해준의 눈은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본 것을 보고자 한다. 그래서 방 한쪽 벽에 사진을 가득 붙여놓고 끊임없이 본다. 너무 무리한 탓일까. 해준은 인공눈물을 달고 산다. 약의 힘을 빌려서라도 또렷이 보고자 하지만. 인공눈물을 넣은 직후의 흐릿함이 계속되는 것만 같아 답답하다. 그래서 그럴까. 결국 잠에도 영향을 미친다. 불면증에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말한다. 일광욕을 하라고. 해가 있는 오전에 옷은 어떻게 입어도 상관없으니 ‘눈을 뜨고’ 일광욕을 하라고 처방을 내린다. 눈을 뜨고 하라니. 정안이 말한다. ‘선생님 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쿨하지 못한 내 모습을. 이 세상 나만이 최고라고 외치며 당당하게 살고 있다고 이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랬다. 나의 당당함은 세상을 향해 있었고, 세상을 향해 외칠 때, 세상이 나의 당당함에 반응해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 자신을 속이고, 또 나 자신에 속았다. 이제는 고백한다. 나는 분명.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본다. '건선'이라는 피부병을 갖고 있는 나는, 실제로 보면 "어, 뭐야? 피부가 좀 벌겋네?" 하는 정도의 반응이겠지만 이것조차도 매우 신경쓰인다. 그래서 한여름에도 반바지를 입기가 부담스럽다. 전역 이후로 머리를 기르지 못하는 이유도 길이가 애매한, 일종의 거지존이 형성되었을 때. 남들이 나의 머리를 이상하게 ..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가 다 능동성이 있는 것이다. 속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것.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성장." "요즘 시대에는 '사랑'하면 남녀 간의 사랑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연민',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이다." 토지의 작가인 박경리 선생님이 하신 말이다. 연민, 불쌍히 여김.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보며 느끼신 감정이다. "불쌍히 여기사..." "민망히 여기사...". 죽어가는, 영원한 죽음으로 침잠해가는 우리를 보며 주님은 그렇게 한탄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자신의 아들까지도 기꺼이 내어주신 것 아닐까. 그 숭고하고도 장엄한 사랑. 최고애. 오늘 꿈에는 할머니가 나왔다. 꿈 속에서 할머니는 아주 잘 걸어다녔다. 나는 할머니에게, 동네 어르신들 중에 밥 굶고 돈 없어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