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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날

1. 현미경. 아주 작은, 굉장히 미세해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끔 한다. 망원경. 무척 큰 것임에도, 멀리 있어서 보이지 않는(보이더라도 손톱으로 가려지는) 것을 보게끔 한다. 두 가지 도구는 인간 시력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본다’는 행위를 ‘알다‘라는 관념으로 변환하자면, 두 가지 도구는 인간의 한계를 확장해주는 것이다. 둘 다 확대한다. 둘 다 끌어당긴다. 2. 확대하고 끌어당겨야만 보이는 것들. 매우 먼 것과 매우 작은 것. 멀다 와 작다. 동일한 개념이다. 먼 것은 작게 보인다. 작은 것은 멀게만 보인다. 작기에 멀고, 멀기에 작다. 멀고 작은 것, 작고 먼 것은 한 마디로 무지의 영역이다. 무지하기에 무시하는 존재다. 그렇다, 존재다.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멀고..
이른 아침에 동네를 한바퀴 도는 것이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갈 수 있는 방향의 가짓수가 매우 많은 동네다. 어제 가지 않은 곳으로, 오늘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된다. 걷다 보면 괜찮은 카페를 발견하기도 한다. 네이버 즐겨찾기에 저장해둔다. 다음에 u와 와야지. 아님, 혼자라도 책보러 와야지. 역사가 있는 동네라 구석구석에 오래된 것들이 많다. 나는 강남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네의 역사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는 동네는, 참 좋다. 역사가 있다는 말은 사람의 손때가 묻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새 것은 기계의 때를 가지고 있음을, 그것을 아직 벗지 못했음을 말한다. 기계의 때. 나는 그것이 싫다. 건물도 사물도 사람도. 사람의 때가 묻은 게 좋다. 때..

1. 요즘 U의 출근길에 동행하곤 한다. U는 출근, 나는 헬스장으로. 가는 길에 종종 그러듯이 U가 물었다. - 얼마큼 사랑해?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식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말했다. -앞으로는 얼마큼 말고 어떻게라고 물어봐바. 잠이 덜 깬 채로 눈 비비고 가글만 하고 주섬주섬 옷 챙겨 너랑 같이 걸으려고 나온 것처럼, 그렇게 사랑해. 사실 생각했던 부분이 아닌데, 말해놓고 보니 흥미로운 발상이어서 기록하려고 한다. 2. '얼마큼'은 상대적이다. 좁쌀만큼은 나에겐 희미하지만 개미에겐 거대하다. 밥 한 공기만큼은 나에겐 하찮아 보이지만 배고픈 자에겐 귀하다.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예수의 사랑을, '얼마큼'에 비유할 수 있을까? 비유했다 한들 그것은 가짜다. 비교한 순간 딱 그 크기만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