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
나는 변덕이 심하다 본문
1.
나는 변덕이 심하다, 라고 써 놓고서는 한참 들여다본다.
기분이 나쁘다. 변덕이 심하다는 말은 부정적인데.
네이버에 검색해본다.
'이랬다저랬다 잘 변하는 태도나 성질.'
역시 기분이 나쁘다.
내 태도가 잘 변하는 건 아닌데. 내 성질이 어때서?
내가 말해놓고 내가 성낸다.
그런데 내가 왜 변덕이 심하다고 생각했지?
2-1.
유년시절을 부족함 없이 자란 나는
이것저것 배울 수 있었다.
태권도, 수영, 피아노, 바이올린 등등.
태권도는 밤띠까지 받고 관뒀다. 빨간띠를 따려면 다리를 찢어야 한다고 해서.
피아노는 체르니 100? 정도 했을 거다. 바이올린도 마찬가지.
그나마 수영은 일반인 상대로는 자신있는 정도다.
매달 바뀌는 학원 등록금 영수증을 보며 아버지가 한 소리 했다.
'그렇게 끈기가 없어서 쓰겠냐.'
그러면 나는 말했다.
'재미없는걸 어떡해.'
물론 나 혼자 속으로 한 말이다.
2-2.
토요일은 데이트 하는 날이다.
라멘이 먹고 싶어서 상수동엘 가자고 한다.
가는 길에 갑자기 평양냉면이 먹고 싶어진다.
상수동에서 충무로로 목적지를 변경한다.
이런 식이다. 한두 번이 아니다.
내 변덕을 받아주는 여자친구를 만나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 난 변덕이 심한 사람이 맞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다.
3.
이놈의 변덕은 내 연애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이 사람 저 사람 찔러보고 내던지고.
(내가 '꾼'이라는 말은 아니다. 아주 얕게, 어느 정도의 사람을 만났을 뿐)
그리고 직업을 선택하는 부분에서도.
영화감독, 시인, 출판인, 마케터, 광고감독, 카피라이터, 사업가, 목수, 전업주부...
임창정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통령도 꿈꾸고 있으니.
4.
그나마 다행인 건,
나이를 먹을수록 내 변덕은 그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변덕이 심하다는 말이 취향이 다양하다는 의미와 동의어라면,
내 취향은 점점 확고해지고 있다.
평양냉면은 필동면옥이 제일이라 치켜들 수 있고
얘도 쟤도 아닌 너를 사랑한다고 외칠 수 있고
영화는 취미로 남겨둬야한다고, 헛헛한 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5.
나는 여전히 변덕이 심한 사람이다.
하지만 내 변덕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면,
내가 너를 선택했듯이
확고한 내가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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