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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하늘에 묻는다> 허진호

gleamyday 2020. 4. 8. 00:47

*스포일러 주의*

 

 

안여사고

 

 

#1

 

이도는 병약한 몸을 빌미로 대리청정을 선언한다.

 

당연히 세자와 대신들은 '거두어주시옵소서'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이도는 한발 물러서서, '과인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이천행궁으로 요양하러 떠나겠다고 한다.

 

그런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행차길에 왕이 타고 가던 마차가 뒤집어진다.

 

안여사고다.

 

신하들은 그저 '죽여주시옵소서'를 연발하고, 이도의 알 수 없는 속내는 병조판서를 서울로 급히 보낸다.

 

그리고 명에 압송되던 장영실은 안여사고의 책임자로 조선 왕실에 다시 압송된다.

 

 

이도와 장영실

 

#2

 

장영실은 이도가 직접 국문하는 재판장에 들어선다. 엄연한 죄의 값으로 곤장 80대라는 중형에 처해질 상황에서 

 

'죄는 미워하나 사람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임금의 특권으로 장영실을 사면해 달라는 영의정의 상소로 기사회생할 소망이 생긴다.

 

그러나, 장영실은 그 소망을 걷어찬다. 역모자인 자신을 처벌하라는 역 상소다.

 

"네가 진정 나를 해하려 했단 말이냐"라고 묻는 이도의 질문에 장영실은 그렇다고 연거푸 긍정한다. 

 


 

 

 

왜 이도는 장영실을 저리 간절하게도 살리려 했나.

 

조정의 대신들로부터, 명으로부터 장영실을 지키려는 몸부림은

 

그를 통하여 개척한 조선의 시간과 하늘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내리사랑이었으리라.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조선의 것.

 

이는 곧 이도 자신의 꿈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이 꿈꾸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도 그는 스스로 자신의 마차 부품을 부러뜨려 진흙탕을 굴렀다.

 

 

 

명으로 압송되는 장영실을 살리기 위한 이도의 특단의 조치였다. 

 

그런데,

 

백성들은 안여가 뒤집어지고 옥체가 훼손되었다는 두려움에 '죽여주시옵소서'를 연신 토해낸다. 

 

이도는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꿈꾸던 조선인가? 이것이 내가 꿈꾸는 조선의 백성들의 모습인가?" 자신의 꿈에 대한 회의감이 서려있는 듯한.

 

자신의 백성, 자신의 나라를 꿈꾸던 이도. 이도의 나라에서 백성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이 회의감은 후에 돌아온 한양에서 영의정과 담판을 지을 때 다시금 이도의 마음을 아려온다.

 

 

'전하께서 원하시던 나라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사옵니까' 묻고 '홀로 서 있는 조선을 꿈꾼 것 뿐이다.' 답하다.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글자란 밥이자 권력이다.

 

백성들에게 우리의 글자를 주고자 했던 이도의 사랑이

 

사대부들에겐 곧 권력의 분산이자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사태보다 더 무서운 신종 바이러스였을 것이다.

 

백성들이 글-밥-권력을 갖게 되면 이는 곧 조선의 신분체계에 균열을 내는 것이고

 

결국 조선의 이씨 왕조는 몰락할 것이 자명했다.

 

왕조와 사대부의 몰락. 그리고 평등의 시대.

 

 

 

영의정은 그것을 염려한 것일까.

 

그래서 요구한다. 

 

장영실을 살리는 조건으로 한글을 만드는 일을 재고해달라고.

 


 

장영실은 생을 거절하고 죽음을 택한다. 그는 이도가 직접 국문하는 재판장에서 죽기를 각오한다.

 

자신이 세종을 죽이려 모의한 것이라고 죽음을 토해낸다.

 

생을 위한 이도의 사랑에 장영실은 죽음의 사랑으로 답한다.

 

장영실은 왜 죽음을, 그 처절한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을까.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도와 영실

 

 

영화 초반에 장영실과 이도가 나란히 누워 하늘의 별을 보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에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꿈꾸는 일이다.

 

왕으로서 항상 내려다보는 일을 하던 이도에게 하늘은 유일하게 올려다볼 수 있는 꿈이고

 

노비로서 항상 내려다봐야만 했던 장영실에게 하늘은 유일하게 올려다볼 수 있는 꿈이다.

 

내려다보는 것,

 

그것은 곧 왕의 일이고 노비의 일이다.

 

 

내려다보는 일, 그것은 조선의 노비에게 설움이자 운명이었고 밥벌이었다.

 

 

장영실의 꿈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자격루와 간의대.

 

내려다보는 일을 하던 장영실이

 

하늘을 여는 천문역법을 자신의 일로 삼는다.

 

아무리 고개를 빳빳이 들고 쳐다봐도 면박 주지 않는 하늘, 별.

 

고개를 조아려야만 살 수 있는 그에게

 

하늘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희망이 주어진다면,

 

자신의 희생은 외려 가치 있는 일이지 않았을까.

 

 

 

조선의 사대부들이 이 땅을 옳게 내려다보고

 

조선의 노비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그런 나라.

 

이도가 꿈꾸었던 조선은 그런 나라다.

 


 

전여빈의 캐릭터는 죽어있다. 

<천문>의 모든 요소에 지분을 부여하였을 때, 전여빈의 캐릭터는 그 지분이 0%다.

기능적으로 혹은 서사적으로 하등의 존재 이유가 없다.

전여빈이라는 배우에게 역할 하나를 맡겨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급조된 캐릭터라는 느낌마저 든다.

양보에 양보를 거듭해서,

전여빈의 캐릭터가 장영실을, 이도의 꿈을 위로하기 위한 애도자의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존재 이유에 대해선 어떤 타당한 변명도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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