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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씀씀이 총량의 법칙

gleamyday 2021. 5. 16. 13:17

 

1. 가정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인간으로 태어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타인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고.
좀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타인을 향해 축하하고 위로하고 공감하고 분노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총량이 한정되어 있다고.
그래서 그 마음을 쓸 수 있는 타자의 수가 정해져 있다고. 

예를 들어,
내 마음 씀씀이를 100으로 본다면
나는 100명의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각 사람에게 1의 마음을 쓸 수 있다.
50명에게는 2의 마음을
10명에게는 10의 마음을 쓸 수 있겠지.

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음이 1이라고 봤을 때
만약,
우리가 관계 맺는 사람의 수가 100명을 넘어선다면?

200명에게는 0.5의 마음을
500명에게는 0.2의 마음을 쓸 수 밖에 없다면?

즉, 내 가정의 핵심은 이렇다.

'관계맺는 타인의 수가 증가할수록 각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마음의 양은 감소한다.'

 

2. 역사

잘은 모르지만
200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한 개인은 자신의 가족, 마을 사람들, 고을의 유지 집안, 관리 등 
많아봐야 100명 남짓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조금 추가한다고 해도
5일장에 드는 단골상인, 친분이 있는 뱃사공, 타 지방으로 시집살이하러 간 딸 내외와 가족정도일까?

해가 지고 등불 하나 없는 바깥에는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각 개인은 그들의 가족을 마주한다.
단지 그 뿐이다.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그 안에서의 일이다.

지금은 어떤가.
가족 친구는 물론이고 직장 동료와 선-후임, 업무상 관계된 모든 사람들. 
그들과 우리는 24시간 연결되어 있다. 
주말에도 업무상 연락하는 밉상 상사와 
인스타에 올린 내 일상에 공감해주는 팔로워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로 아파하고 신음하는 지구촌 주민들.
부패를 일삼는 악덕 정-재계 인사들. 유명인사들. 말그대로 '스타'들.

우리는 그들 모두에게 마음을 쓴다. 
조금의 마음이라도 쓰이게 마련이다. 

200년 전에는 알 수 없을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고
200년 전에는 할 수 없을 시공간에서 마음을 쓰고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3. 현실

우리의 지금에 
내가 세운 가설을 적용해보면 

우리는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수만에 이르기까지 
타인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양의 마음을 쓰면서.

우리는 그렇게 
우리 마음의 총량을 헤프게 분배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마음을 분배하는 일이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면?
타인과의 관계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발전이 이렇게 만든 거라면? 

나는 이런 씁쓸함을 '마음 씀씀이 총량의 법칙'으로 달래보고 싶다. 

 

4. 에필로그

마음 씀씀이의 총량에 눈물짓는 우리에게
신적인 사랑이 임한다면
총량은, 그 한계는 개나 줘버리게 될 것이다.

신적인 사랑. 아가페 사랑에는 한계가 없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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