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박찬욱
1.
마침내 해준은 잠을 잘 잤을까?
잠복근무를 해서 잠을 못 자는 거라고 투덜대는 파트너 형사에게, 그게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잠복근무를 하는 거라고 말하는 해준. 그에게 잠은 중요하다.
해준의 눈은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본 것을 보고자 한다. 그래서 방 한쪽 벽에 사진을 가득 붙여놓고 끊임없이 본다. 너무 무리한 탓일까. 해준은 인공눈물을 달고 산다. 약의 힘을 빌려서라도 또렷이 보고자 하지만. 인공눈물을 넣은 직후의 흐릿함이 계속되는 것만 같아 답답하다. 그래서 그럴까. 결국 잠에도 영향을 미친다.
불면증에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말한다. 일광욕을 하라고. 해가 있는 오전에 옷은 어떻게 입어도 상관없으니 ‘눈을 뜨고’ 일광욕을 하라고 처방을 내린다. 눈을 뜨고 하라니. 정안이 말한다. ‘선생님 개원하신 지 얼마 안 되셨죠? 이포에는 항상 안개가 있어서 해가 안 보여요.’
의사는 왜 눈으로 일광욕을 하라고 했을까. 안개가 자욱한 이포에서. 눈이 침침해 인공눈물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해준에게. 빛은 무슨 의미였을까.
지루하고 뿌연 삶에 마침내 서래가 나타난다. 서래는 해준에게 한 줄기 빛이었을까.
2.
결국 해준은 의사의 플랜비 처방에 따라 코로 숨 쉬는 것을 도와주는 기계를 구매하여, 그것의 힘으로 불면증을 이겨내려 한다. 하지만 잠은 못 잤을 것 같다. 결국 감겨야 하는 건 눈인데, 흐릿해서 더욱 서래를 갈망케 하고. 해준의 시신경을 오히려 집중케 한다. 집중하니 눈은 항상 살아있다. 해준 자신의 눈 이건만, 해준의 맘대로 할 수 없다. 잠들지 못하고 계속해서 깨어있는.
마침내 서래가 나타나고 해준은 그녀의 눈에 빨려 들어간다.
서래는 해준의 소지품을 제 것인 양 잘도 쓴다. 해준의 립밤을 바르고 민트 캔디를 먹는다. 키스보다 더 달콤하게 다가오는 서래 앞에 해준은 잠 못 드는 나날의 연속이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못 자는 해준. 서래의 마음을 알지 못해 못 자는 해준. 이중고다.
사건이 해결되는가 보다 하는 순간, 그녀는 또 다시 영원한 난제를 두고 떠난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널 떠난다’는 올드함과 함께 서래는. 해준에게 영원히 잠들지 못할 고통을 주고 떠난다. 원래 사랑은 아픔을 동반하니까. 다시 말해야겠다.
서래는 해준에게 영원히 잠들지 못할. 사랑을 주고 떠난다.
3.
영화 속 해준이 유일하게 잠든 순간이 있다. 서래가 재워줬을 때.
불쑥 해준의 집에 들이닥친 서래는. 사건사진들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벌건 빛과 함께 사그라드는 사건을 보며 해준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서래는 말한다. 내 숨에 맞춰 숨을 쉬라고. 그렇게 해준은 잠에 드디어. 들어간다.
서래의 숨결을 코 호흡기가 대신해주지는 못할 터. 서래가 없는 지금. 해준은 영원히 잠들지 못할 것이다. ‘서래야!’를 영원히 외치며. 서래를 똑바로 보기 위해. 알기 위해. 잠 못 드는 애틋한 고통 속에 침잠할 것이다.
원래 사랑이란 게 그러니까. 잠들지 못하니까. 잠들기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