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글을 씁니다

나의 할머니

gleamyday 2022. 5. 8. 09:23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가 다 능동성이 있는 것이다. 속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것.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성장."
"요즘 시대에는 '사랑'하면 남녀 간의 사랑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연민',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이다."

토지의 작가인 박경리 선생님이 하신 말이다. 연민, 불쌍히 여김.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보며 느끼신 감정이다. "불쌍히 여기사..." "민망히 여기사...". 죽어가는, 영원한 죽음으로 침잠해가는 우리를 보며 주님은 그렇게 한탄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자신의 아들까지도 기꺼이 내어주신 것 아닐까. 그 숭고하고도 장엄한 사랑. 최고애.

오늘 꿈에는 할머니가 나왔다. 꿈 속에서 할머니는 아주 잘 걸어다녔다. 나는 할머니에게, 동네 어르신들 중에 밥 굶고 돈 없어 힘들어하시는 분 있으면 알려줘, 라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문 열린 집을 기웃거리며 그릇을 세는 냥 손가락을 이리저리 짚었다. 아, 그렇게 말고요. 할머니는 킥킥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고 우린 서로 부둥켜 안고 웃었다. 그 웃음. 꿈 속에서 할머니는 분명 할머니였는데. 웃음소리는 소녀의 것이었다. 할머니의 걸음걸이도, 남의 집 문을 기웃거리던 그 폼도, 분명 소녀의 것이었다. 천국에선 그럴 것이다. 아니, 오히려 주님과 함께 날아다니며 영생을 누릴 것이다. 그 웃음, 그 걸음걸이. 주님도 나의 할머니가 그렇게 영생을 누리길 원하실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며칠 전, 노년에는 걷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걸을 수 있음으로 치매를 예방하고 근육이 붙어 건강하게 노후를 보낸다고. 걷는 능력이 퇴화하여 침대신세를 지게되면 육체가 확 늙어버리고 기대수명도 확 줄어든다고. 그래서 걷는 능력을 잘 유지해야하고, 유지하는 방법들을 죽 나열한, 그런 기사였다. 

당연히 나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지금은 아예 못 걸으시는 나의 할머니. 1년여 전만 해도 당뇨약 받으러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에서, 어후 신체나이는 60대예요 60대. 오래사시겠어. 무릎만 좀 불안한데 운동만 잘하면 건강하게 오래 사실거야. 라고 했었다. 무릎. 그것이 할머니를 이렇게 만들 줄이야. 

걷기가 힘들어지고 같이 사는 우리도 매번 부축하고 모시기가 버거워져 결국. 할머니는 요양원에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할머니는 욕창을 얻었다. 몇주 전 할머니를 모시고 욕창 검사 받으러 병원에 가야했을 때. 나는 60대의 할머니가 아닌, 확 늙어버린 나의 할머니를 마주했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늙어가는, 나의 할머니. 아아, 이렇게 한 생명이 죽어가는구나. 

꿈에서 깼을 때, 그래서 괴로웠다. 한 생명의 스러짐을 마주하는 것. 그것도 가장 애정하는 나의 할머니의 스러짐을 마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의 육체가, 자연의 이치에 준하여, 그렇게 자연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 뒤에 영원한 죽음이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 주님과 함께 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슬퍼하면 안 된다. 오로지 지금. 이 땅에서 조금 더 행복하길, 주님과 함께 행복하길 기도한다. 

다음주엔 할머니 만나러 가야겠다.